결정과 에너지 밴드
구리선은 전기를 잘 통하고 유리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반도체(Semiconductor)는 온도·빛·불순물 몇 ppm으로 전도도가 10억 배씩 바뀐다. 이 놀라운 성질의 뿌리는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늘어선 결정과, 그 결정 속에서 전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가 띠(밴드)로 묶이고 그 사이에 금지대(밴드갭)가 생긴다는 사실에 있다. 이 장에서는 결정을 직접 돌려 보고, 원자를 하나씩 가까이 붙여 밴드를 만들어 보고, E–k 곡선 위에서 전자를 끌어 보며 반도체 물리의 첫 언어를 익힌다.
- 금속·반도체·절연체를 전도도와 밴드갭으로 구분한다.
- 다이아몬드·섬아연광 격자의 구조(FCC 두 개의 겹침)를 3D로 이해하고 원자 밀도를 계산한다.
- 밀러 지수로 결정면과 방향을 표기하고, 면에 따라 원자 배열이 어떻게 다른지 본다.
- 원자 준위가 N개의 원자가 가까워지며 밴드로 갈라지는 과정을 설명한다(Si의 sp³ 그림).
- 크로니히–페니 모형으로 허용대·금지대가 생기는 이유와 E–k 관계를 이해한다.
- E–k 곡률에서 유효 질량을, 기울기에서 군속도를 구하고 정공의 개념을 이해한다.
- 직접·간접 밴드갭의 차이와 광흡수·발광에 미치는 영향, 밴드갭의 온도 의존성을 안다.
반도체란 무엇인가
물질의 전기 전도도 \(\sigma\)는 30자리 가까운 범위에 걸쳐 있다. 은·구리 같은 금속은 \(10^{5}\sim10^{6}\) S/cm, 석영·테플론 같은 절연체는 \(10^{-16}\) S/cm보다 작다. 반도체는 그 사이, 대략 \(10^{-8}\sim10^{3}\) S/cm에 걸친 넓은 영역을 차지한다. 중요한 것은 값 자체보다 그 값을 우리가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를 반도체답게 만드는 세 가지 성질은 다음과 같다. ① 도핑: 5가 원소(P, As)나 3가 원소(B)를 미량 넣어 전자나 정공의 수를 정밀하게 정한다(2장). ② 온도 의존성: 열에너지로 전자가 금지대를 넘어 전도도가 지수적으로 증가한다. ③ 빛과의 상호작용: 밴드갭보다 큰 에너지의 광자를 흡수해 전자–정공 쌍을 만들거나(태양전지·이미지 센서), 반대로 재결합하며 빛을 낸다(LED·레이저).
결정 구조: 다이아몬드와 섬아연광
고체는 원자 배열의 규칙성에 따라 비정질(Amorphous), 다결정(Polycrystalline), 단결정(Single crystal)으로 나뉜다. 소자는 거의 모두 단결정 위에 만든다. 결정은 격자(Lattice)(점들의 주기적 배열)와 각 격자점에 놓이는 원자 묶음인 기저(Basis)의 조합으로 기술한다.
Si·Ge·탄소(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 격자(Diamond lattice)를 이룬다. 면심 입방(FCC) 격자에 원자 두 개짜리 기저 \((0,0,0)\), \((\tfrac14,\tfrac14,\tfrac14)a\)를 얹은 구조, 즉 두 FCC 격자를 몸통 대각선 방향으로 \(1/4\)만큼 어긋나게 겹친 것이다. 모든 원자는 정사면체의 꼭짓점에 있는 4개의 이웃과 sp³ 공유 결합을 한다. 두 FCC 부격자에 서로 다른 원자(Ga와 As)가 앉으면 섬아연광(Zincblende) 구조가 된다(GaAs, InP 등). GaN과 SiC는 같은 사면체 결합이지만 쌓는 순서가 다른 육방정(우르차이트, 4H) 구조가 안정하다.
다이아몬드·섬아연광 격자와 결정면 자르기
밀러 지수: 결정면과 방향의 이름
결정면은 밀러 지수(Miller indices) \((hkl)\)로 부른다. ① 면이 세 축과 만나는 절편을 격자 상수 단위로 구한다. ② 역수를 취한다. ③ 같은 비를 유지하며 가장 작은 정수로 만든다. 축과 평행하면 절편이 ∞이므로 지수는 0, 음의 절편은 숫자 위에 막대(\(\bar1\))를 붙인다. 입방 결정에서 방향 \([hkl]\)은 면 \((hkl)\)의 법선이다.
이 면의 밀러 지수는?
원자 준위에서 에너지 밴드로
고립된 Si 원자의 최외각 전자는 3s에 2개, 3p에 2개다. 두 원자를 가까이 가져오면 두 원자의 같은 준위가 겹쳐 결합(Bonding)·반결합(Antibonding) 두 준위로 갈라진다. 파울리 배타 원리 때문에 같은 상태에 전자가 둘 이상(스핀 포함) 들어갈 수 없으므로, N개의 원자가 모이면 원래 준위 하나는 N개의 아주 가까운 준위로 갈라진다. 결정 1 cm³에는 원자가 \(5\times10^{22}\)개이므로 이 준위들은 사실상 연속인 에너지 띠(Energy band)가 된다.
Si에서는 한 가지 일이 더 일어난다. 원자 간 거리가 줄어 3s 띠와 3p 띠가 넓어지다 겹치면, s와 p가 섞인 네 개의 sp³ 혼성 궤도가 사면체 방향으로 결합을 만든다. 그 결과 8N개의 상태(3s 2N + 3p 6N)가 아래 4N개(결합 상태 → 가전자대(Valence band))와 위 4N개(반결합 상태 → 전도대(Conduction band))로 다시 나뉘고, 그 사이에 금지대가 열린다. 원자당 가전자 4개, 총 4N개의 전자는 정확히 가전자대를 가득 채운다. 꽉 찬 띠와 빈 띠 사이에 틈이 있다는 것, 이것이 반도체와 절연체의 정의다.
원자를 가까이: 준위가 밴드가 되는 과정 (Si, sp³ 모형)
준위가 갈라지는 폭은 이웃 원자 궤도 사이의 겹침 적분(호핑 에너지) \(t\)에 비례한다. 원자 N개의 사슬에서 준위는 \(E_j = E_0 - 2t\cos\!\big(\tfrac{j\pi}{N+1}\big)\), \(j=1,\dots,N\)으로 폭 \(4t\) 안에 촘촘히 깔린다. 위 시뮬레이터의 준위 배치가 바로 이 식이다. \(t\)는 거리에 지수적으로 줄어드므로 원자를 조금만 떼어도 띠가 급격히 좁아진다.
주기 퍼텐셜 속의 전자: 크로니히–페니 모형
반대 방향에서 출발해 보자. 자유 전자는 \(E = \hbar^2k^2/2m\)의 어떤 에너지든 가질 수 있다. 결정 안의 전자는 원자핵이 만드는 주기적인 퍼텐셜 \(V(x+a)=V(x)\)를 느낀다. 블로흐 정리(Bloch theorem)에 따르면 이때 파동 함수는 평면파에 격자 주기를 갖는 함수를 곱한 꼴 \(\psi_k(x) = u_k(x)e^{ikx}\)이다. 1931년 크로니히와 페니는 퍼텐셜을 사각 우물과 장벽의 반복으로 단순화해 이 문제를 정확히 풀었다.
장벽을 폭은 0, 높이는 무한대로 보내되 넓이 \(V_0 b\)는 유지하는 극한(델타 장벽)에서, 슈뢰딩거 방정식의 경계 조건은 다음 한 줄로 정리된다.
크로니히–페니 모형: 허용대·금지대와 E–k
E–k 관계와 유효 질량
결정 속 전자의 상태는 파수 \(k\)(결정 운동량 \(\hbar k\))와 띠 번호로 매겨진다. E–k 곡선 하나에 전자의 동역학이 다 들어 있다. 전자 파동 묶음은 군속도로 움직이고, 외력 \(F\)는 \(k\)를 바꾼다.
E–k 곡선 위의 전자: 기울기 = 속도, 곡률 = 질량
Si의 전도대 바닥은 6개의 타원체 골짜기라 방향마다 질량이 다르다(\(m_l = 0.92m_0\), \(m_t = 0.19m_0\)). 전기 전도에는 이를 조화 평균한 전도도 유효 질량(\(\approx0.26m_0\)), 상태 밀도 계산에는 골짜기 수까지 반영한 상태 밀도 유효 질량(\(\approx1.09m_0\))을 쓴다. 이 책의 엔진 SC.MAT에 두 값이 모두 있다(2장에서 사용).
전자와 정공
꽉 찬 가전자대는 전류를 나르지 못한다. 모든 \(+k\) 상태에 대응하는 \(-k\) 상태가 차 있어 속도의 합이 0이기 때문이다. 열이나 빛으로 결합 하나가 끊어지면 전자 하나가 전도대로 올라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가전자대에는 빈자리가 남는다. 이웃 결합의 전자가 이 빈자리로 옮겨 오면 빈자리는 반대쪽으로 이동한다. 수많은 가전자대 전자의 집단 운동을 '빈자리 하나의 운동'으로 기술한 것이 정공(Hole)이다. 정공은 전하 \(+q\), 양의 유효 질량(가전자대 꼭대기의 음의 곡률을 뒤집은 것)을 갖는 준입자로 행동한다.
결합 그림으로 본 정공의 이동
직접·간접 밴드갭
3차원 결정의 E–k는 방향마다 다르다. 가전자대 꼭대기는 거의 모든 반도체에서 \(k=0\)(Γ점)에 있지만, 전도대 바닥의 위치는 재료마다 다르다. GaAs·GaN처럼 전도대 바닥도 Γ에 있으면 직접 밴드갭(Direct bandgap), Si·Ge·SiC처럼 다른 k(Si는 X 방향 85% 지점, Ge는 L점)에 있으면 간접 밴드갭(Indirect bandgap)이다.
빛을 흡수하거나 낼 때는 에너지와 운동량이 모두 보존되어야 한다. 그런데 광자의 운동량 \(\hbar k_\text{photon} = h/\lambda\)는 \(\lambda\approx1\) µm에서 브릴루앙 영역 크기(\(\pi/a\sim6\times10^{9}\) m⁻¹)의 약 0.1%에 불과하다. 그래서 광학 전이는 E–k 그림에서 수직선이다. 간접 갭을 건너려면 격자 진동 양자인 포논(Phonon)이 운동량을 대신 주고받아야 하고, 세 입자가 동시에 관여하는 과정은 확률이 훨씬 낮다.
어느 쪽이 빛을 잘 낼까? 직접 vs 간접 밴드갭
밴드갭의 온도 의존성과 재료 상수
온도가 오르면 격자가 열팽창하고 원자 진동(전자–포논 상호작용)이 커져 밴드갭이 줄어든다. 실험값은 바시니 식(Varshni equation)으로 잘 맞는다. 상온 근처의 기울기는 Si에서 약 −0.27 meV/K로, 100 K 오를 때 갭이 약 2.5% 줄어든다. 작아 보이지만 진성 캐리어 농도는 갭에 지수적으로 의존하므로(2장) 무시할 수 없다.
SC.Eg)을 쓴다.온도에 따른 밴드갭과 흡수 한계 파장
| 재료 | 구조 | a (Å) | Eg 300 K (eV) | 갭 | m*e,dos / m*h,dos | εr | ni 300 K (cm⁻³) |
|---|
표의 \(E_g\)와 \(n_i\)는 이 책의 물리 엔진으로 계산한 값이다(교과서마다 수 % 차이가 있다. 예: Si 1.12 eV, \(n_i\) 1.0~1.5×10¹⁰ cm⁻³). SiC는 4H 다형, GaN은 우르차이트이며 a는 육방정 기저면 격자 상수다.
핵심 정리
- 반도체는 꽉 찬 가전자대와 빈 전도대 사이에 적당한 크기(~0.5~4 eV)의 금지대를 가진 결정이다. 도핑·온도·빛으로 전도도를 크게 바꿀 수 있다.
- Si·Ge는 다이아몬드, GaAs는 섬아연광 구조: 두 FCC 부격자를 ¼ 대각선만큼 어긋나게 겹친 것. Si 원자 밀도 \(8/a^3 = 5\times10^{22}\) cm⁻³.
- 밀러 지수 \((hkl)\)은 절편의 역수를 정수화한 것. 면 간격 \(d = a/\sqrt{h^2+k^2+l^2}\). CMOS 웨이퍼는 (100).
- N개의 원자 준위는 N개로 갈라져 띠가 된다. Si는 sp³ 혼성으로 4N 상태씩의 가전자대·전도대로 나뉘고 사이에 갭이 열린다.
- 주기 퍼텐셜은 브릴루앙 영역 경계 \(k = n\pi/a\)에서 갭을 연다(크로니히–페니). 장벽이 셀수록 띠는 좁아진다.
- \(v_g = \hbar^{-1}dE/dk\), \(m^* = \hbar^2/(d^2E/dk^2)\). 띠가 넓을수록 가볍다. 가전자대 꼭대기의 빈자리는 \(+q\), 양의 질량의 정공으로 기술한다.
- 직접 갭(GaAs, GaN)은 광학 전이가 수직이라 발광·흡수가 강하고, 간접 갭(Si, Ge, SiC)은 포논이 필요해 약하다. \(E_g\)는 온도가 오르면 줄어든다(바시니 식).
확인 퀴즈
Ge의 격자 상수는 5.658 Å이다. Ge의 원자 밀도에 가장 가까운 값은?
x축을 ½, y축을 1에서 자르고 z축과 평행한 면의 밀러 지수는?
두 반도체 A, B의 전도대 바닥이 모두 포물선인데 A의 곡률이 B의 3배다. 옳은 것은?
크로니히–페니 모형에서 장벽 세기 P를 매우 크게 하면?
Si에 오른쪽을 가리키는 전기장을 걸었다. 가전자대의 정공은 어느 쪽으로 움직이나?
Si로 효율 좋은 LED를 만들기 어려운 근본 이유는?